티스토리챌린지 21

1. 마이어 구겐하임 기지 (1-2)

1-2 집 근처 광장에서 노래를 부르던 길거리 가수가 있었다. 40대의 라틴계로, 선글라스에 치렁치렁한 머리를 한 전형적인 예술가 타입이었다. 집 앞 산책을 나갈 때마다 광장에 있는 그 가수의 노래를 듣곤 했었다. 값싼 앰프와 낡은 기타 하나로 연주하는 그의 노래는 어딘가 허술해 보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공짜로 듣기엔 조금 과분한, 꽤나 듣기 좋은 노래들이었다. 특히  AI가 거의 섞이지 않은 그의 순수한 목소리가 듣는 내내 미소를 짓게 만들었었다. 어느 날, 낯선 기계음이 울리며 병실의 조명이 순간적으로 깜빡였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차가운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불이 꺼진 깜깜한 병실이 순간 밝아졌고, 그곳에는 거리의 가수가 서 있었다. 그 녀석은 광장에서 쓰던 기계들을 챙겨와서 내 앞에서 ..

1. 마이어 구겐하임 기지(1-1)

"나는 이미 죽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그들은 입을 모아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 "  1-1 한 동안 정신이 몽롱했다. 나른한 오후,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또 자고나서 잠에 절어질대로 절어진 뒤, 더 이상 잠을 청할 수 없을 때의 그 느낌이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이렇게 누워 있고 싶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누워 있으면, 다시 달콤한 꿈 속으로 푹 빠질 것만 같았다. 따뜻한 액체가 온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물 속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물 비스무리할 액체일 것이다. 마치 육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 나를 덮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두..

2. 선택자, 박 한

3) 현금 100억  ------------------------------------------------------------------------------------------- 한은 스타벅스 4인 테이블에 홀로 앉아 캬라멜 마끼아또를 홀짝이며 핸드폰을 연신 들여다봤다. '100억! 이게 이렇게 쉬웠다고? 와, 그때 5억도 안 되는 돈 때문에 인생을 접으려 했었는데..인생 참 웃기지도 않네.' 한은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회사에서 억울하게 뒤통수 맞고, 이혼당하고,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고 왕따로 살던 그 시절이 무슨 슬픈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스쳐지나갔다. ‘솔직히, 좀 짠하기 했지. 되는 일 하나 없던 인생 내리막길에 허공에 발차기나 하고, 혼자 깡술하며 울기나 하고. 뭐, 이..

2. 선택자, 박 한

2) 나노로봇 아크로포스 ------------------------------------------------------------------------------- 지금까지 한이 파악한 나노로봇 아이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전체 크기는 평범한 성인 정도지만, 이 로봇은 사실 거대한 "쌀알 무리의 나노로봇들"로 이루어져 있다. 놀랍게도 이 쌀알들은 그냥 쌀알이 아니라, 인류가 상상도 하지 못할 양자 컴퓨터 능력을 가진 나노로봇들이다. 각각 쌀알만한 마이크로 로봇이지만, 다 합치면 하나의 ‘나노로봇 아이’라는 개체가 된다. 그리고 충격적인 건 쌀알만 한 그 로봇 안에도, 또 쌀알보다 더 작은 미세 나노로봇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이다. 무슨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도 아니고... 더 이상 분해될 수 없는 가장..

2. 선택자, 박 한

1) 상상력의 산물 ---------------------------------------------------------------------------------- '이야~~~~! 이게, 이게, 이렇게 뚝딱 되는거였어?''저를 너무 무시하신 것 같네요. 이런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쉽습니다.''너 혹시 외계 어느 행성에서 지구 정복하려다 잠시 알바 뛰러 온 거 아냐? 우주 최강의 프로그래머 뭐 그런 거 같은데?''주인님, 그런 정보는 은하연합 기밀 사항입니다.''지랄을 한다!' 한은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은행 계좌에 100억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것 아닌가? 100억을 만들라고 지시하자마자, 진짜 순식간에 100억이 그의 계좌에 생긴 것이었다. 1억도, 10억도 아닌 100억이라니! ..

1. 오더(Order)

6) 오더  -------------------------------------------------------------------------------------------- 지금까지 경험해 온 범주를 벗어난 극강의 강함. 극악의 공포가 피부로, 혈관으로, 신경과 뇌로 빠르게 전해졌다. 모두 입조차 떼기 힘들었다. 다들 근육이 저절로 빠르게 움직였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레전드급 나노로봇, 이 막강한 적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머라도 내뱉어 이 적막을 깨야만 할 것 같았다. 어차피 죽는다. 좀 덜 비굴하게 죽어야 하지 않겠나? "산 넘으면 더 큰 산이 있어 버리네? 이거 무슨 RPG 게임이야? 여기 있는 이 놈마저 죽이면 또 더 강한 놈 나오는 거 아냐?""정보 탐색이 아무것도 안..

1. 오더(Order)

5) 반격  -------------------------------------------------------------------------------------------- 한과 미아는 다시 3층으로 올라갔다. 적들은 한과 미아를 보고 경악했다. 분명 총알들이 저 녀석의 가슴과 복부를 관통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던 저격 작전이었다. 저격을 당한 선택자들 중에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그 심각한 부상에서 회복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알수 없는 아지랭이같은 공포를 가슴 속에 떨쳐버리지 못한 채, 재빨리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면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적들은 견고한 방어진을 다시 형성하였다. 한은 상대편 진영이 술렁거리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

1. 오더(Order)

4) 흡수  -------------------------------------------------------------------------------------------- 미아는 새로운 기술인 천무를 시전했다. 선택자들 눈으로도 쫒아가기 힘들 정도로 아주 빠르게 오른쪽 건물로 이동했다. 뒤늦게 미아를 발견한 적들은 미아에게 집중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미아의 흔적만 따라갈 뿐이었다. 용광검 업그레이드로 미아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적들은 미아의 이전 능력치 데이타에 맞춰 공격을 했기 때문에 단 한 발도  맞추지 못했다. 뭔가 잘못된 것을 안 적들은 빠르게 미아의 능력치 데이타를  수정하고 재공격을 가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미아는 이미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

1. 오더(Order)

3) 결단 -------------------------------------------------------------------------------------------- "어이, 대장. 방법이 있긴 한데." 메흐디가 주저주저하다가 마지못해 입을 떼었다.  "그게 뭔데요? 생각나는 게 있으면 바로바로 말하세요. 지금 시간이 없어요." 한은 간절한 눈빛으로 메흐디를 바라보았다. 메흐디는 한을 쳐다보지 않았다. 고개를 떨군 메흐디의 눈이 심하게 떨렸다. "자네가 싫어하는 그거...""그거라니요?""거 있지않나... 그거...""혹시 그거?""그래 그거...""할아버지! 진짜 그거 말하는 거예요?""그래, 진짜 그거. 지금 그거 말곤 방법이 없잖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여기있는 모두가 다 알고...""..

1. 오더(Order)

2) 포위 -------------------------------------------------------------------------------------------- [베리어 40% 남았습니다.] 메흐디의 나노로봇이 대원 모두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남은 시간은?” 베리어 끝에 누워있던 한은 눈을 감은 채,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현재 공격이 계속된다면, 6분 17초 후 마지막 배리어가 해제됩니다.] 메흐디의 나노로봇 ‘길가메쉬’는 차갑고 감정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마지막 생명줄이 6분 후면 사라진다고? 그때가 되면 우리에겐 뭐가 남지? 이대로 다 죽는 건가? 메흐디와 라마  저 한심한 또라이 둘은 기가 막히게도 태평하구나. 이해도 잘 되지 않는 과학 이야기를 이렇게나 오래 한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