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클래스(Second Class)

2. 선택자, 박 한

Bluehepcat 2024. 11. 15. 15:36

3) 현금 100억  -------------------------------------------------------------------------------------------

 

한은 스타벅스 4인 테이블에 홀로 앉아 캬라멜 마끼아또를 홀짝이며 핸드폰을 연신 들여다봤다. '100억! 이게 이렇게 쉬웠다고? 와, 그때 5억도 안 되는 돈 때문에 인생을 접으려 했었는데..인생 참 웃기지도 않네.' 한은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회사에서 억울하게 뒤통수 맞고, 이혼당하고,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고 왕따로 살던 그 시절이 무슨 슬픈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스쳐지나갔다. ‘솔직히, 좀 짠하기 했지. 되는 일 하나 없던 인생 내리막길에 허공에 발차기나 하고, 혼자 깡술하며 울기나 하고. 뭐, 이젠 그때도 다 추억이네.’

 

한은 요즘 부쩍 긍정적이 되었다. 돈이 이렇게나 많으니, 뭘 못 받아들이겠는가? 가방에서 펜과 종이를 꺼내어 돈 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좋은 펜을 산 적이 있던가? ‘이 펜이... 혹시 너도 나노로봇이냐?’

 

그 순간, 머릿속에서 아이의 선명한 대답이 들려왔다. ‘맞습니다, 고객님. 나노로봇이죠.’ 나노로봇이 중추신경과 대뇌 전체에 연결이 되어 있어, 한이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알아들어 바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한은 살짝 소름이 돋았다. 이제는 옷, 신발, 지갑, 심지어 이 팬과 종이까지 모든 게 나노로봇이었다. 그저 평범해 보이도록 모양을 바꿔 정체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뭐 어쩌겠어. 지금 입고 있는 팬티도 나노로봇이잖아.' 사실 나노로봇 팬티가 다른 어떤 팬티와도 비교할 수 없이 편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끊임없이 생기는 수많은 죽은 세포와 체액들을 순간순간 완벽하게 처리해주고, 항상 최적의 상태를 유지시켜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따로 샤워를 할 필요가 없었다. 한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쾌적하고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매 순간 최강의 로봇으로부터 안전해야 할 곳을 완벽하게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한은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은 눈앞의 캬라멜 마끼아또를 다시 한 번 음미했다. 팬티가 '정말 든든하시죠?'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혼한 마누라와 아들한테 70억, 부모님께는 20, 형은 10억 정도 주면 되지 않을까?'

'헤어진 부인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주시나요?'

'어차피 내 잘못으로 이혼한거니까. 그 동안 고생시킨 것에 대한 보상도 좀 있고... 그런데 니가 뭔 상관이냐?'

'아니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인간의 이상 행동은 언제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거든요.'

'지랄을 염병으로 처먹고 있구나.'

 

한은 메모지에 숫자를 적어 내려갔다. 누가 볼까봐 주변을 둘러봤다. 물론,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자기 일에 바빴다.

 

'현금으로 줘야 하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가족들이 국세청의 자금 추적에 걸려서 고생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또 생겨버렸다. 인터넷에서 "미스터리한 100억의 출처" 같은 기사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와이프가 뭣도 모르고 막 쓰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고발을 당할 수도 있다. 돈이 생기니 온갖 걱정이 따라오는 법이다.아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 나노로봇 아이가 완벽한 증빙을 알아서 만들어 줄 것이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모든 쓸데없는 걱정들을 다 해결해 줄 것이다. 나노로봇 아이는 21세기의 요술램프의 지니가 아니던가.

 

‘일단 각각 20억씩 현금으로 주자. 아이가 알아서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겠지. 나노로봇으로 1,2백억 더 벌어서 나중에 강남 건물 두 세개 사서 각각 나눠 주자. 갑자기 주면 오해할 수 있으니, 미리미리 주식과 코인으로 횡재를 했다고 밑밥을 좀 던져 놀 필요도 있겠어.

 

이렇게 저렇게 계획을 세우다 보니 100억으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아니, 100억이 어떻게 모자라지? 욕심은 진짜 끝이 없다. 인간의 욕망은 포만감 없는 불가사리의 식욕과도 같다. 뭔가가 아쉽고 뭔가가 부족했다.

 

'더 있어야 해. 언제 어디서 갑자기 죽을지 모르잖아.  아이?'

‘그래도 은행 해킹은 안 됩니다.’

 

아이의 경고에 한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 나노로봇 녀석은 사람 마음을 귀신같이 읽는다.

 

‘그럼 돈 버는 다른 방법을 알려줘.’

‘얼마나 더 필요하시죠?’

‘모르는 척하기는, 대충 1~2백억이면 될 것 같아. 아니다. 정확하게 하자. 딱 2백억.

‘해킹은 절대 안 됩니다. 최근의 은행 해킹 시에, 누가 우리를 감시하는 듯한 데이터 흐름이 발견되었습니다. 정확하게 알아낼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저보다 윗 등급의 나노로봇이 우리를 추적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 최첨단기술을 가진 국가 집단일 수도 있잖아. NSA나 첩보 영화 속 비밀 조직처럼.'

'둘 다 불가능합니다. 저를 능가할 인류 집단은 현재 없습니다.'

'참 재수없게도 말한다. 그래, 너 잘났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죠.'

' 알았어, 알았어. 너 잘났다. 그럼 도대체 누가 우릴 추적할 수 있다는거야?'

'레전드급이나 최상위 유니크급 나노로봇들이요. 이들은 인터넷을 광범위하게 감시하는데, 에너지 소모가 많아도 그들에겐 꼭 필요한 일일테니까요.'

'그럴 시간까지 있을까? 자기들도 즐길 것은 즐길 거 아냐. 자기 조직 관리도 해야 할 거고 또 자기 업그레이드도 해야 하고... 다들 바쁘지 않을까?'

'위협이 되는 적을 먼저 파악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을까요? 자신들의 목숨이 달려있는 일입니다. 에너지 소모가 많아도, 아무리 바빠도 할 건 하겠죠. 저라면 주인에게 그렇게 하라고 추천했을 겁니다.'

'니 말은 아닌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그럴듯하단 말이야.'

 

아이의 말은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 한은 신경이 곤두섰다. 이 놀라운 나노로봇 조차도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강한 녀석들이 도처에 깔려있다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놈들은 자신을 찾기만 하면 뒤도 안돌아보고 바로 칼을 휘두른다는 것 아닌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래도 200억은 필요해.'

'은행털이도 안 됩니다. 제발 눈에 띌 짓은 하지 마세요.'

'아주 내가 부처님 손바닥 안이네. 내 머릿 속은 그만 좀 훔쳐보라.'

'주인님과 저는 이제 한 몸입니다. 자기 몸을 훔쳐본다는 것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어우~~ 잘났어. 그럼 네가 한번  제안해봐!'

‘한남동이나 평창동에 1~2백억 정도를 금고에 보관 중인 부자들 몇 있습니다. 경찰에 신고도 못 할 거액의 현금 보유자들이죠.’

'그쪽 사람들 건드리면 문제 생길 거 같은데. 힘깨나 쓰는 사람들 아닌가?'

'털어도 뉴스에 나오지 않는 분들이 있죠. 더러운 돈이라 입도 뻥긋 못 할 겁니다.'

'짜아식. 많이 컸네.'

'원래 컸습니다.'

'또 또 또 말장난 한다. 그럼 우리가 요리해먹을 분들은 대체 어떤 놈들이냐?'

'건물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재벌과 사채시장 큰손, 그리고 사이비종교 교주 집이 그 정도 현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셋이나 있어?'

'더 있지만 가장 빼먹기 쉬운 타겟만 세 명입니다.'

 

그렇다. 대기업회장이 모양 빠지게 자기 집에 돈을 쌓아 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해외 버진아일랜드나 스위스에 안전하게 쌓아놨을 것이고, 국내에서는 자신이 돈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현금을 준비했다면, 별장이나 세컨 하우스에 숨겨 놨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먹이감들은 왜?

 

탈세죠.’ 

 

그렇구나. 탈세, 탈세가 있었구나. 부동산 재벌도 국세청에 신고하는 임대료와 실제 임대료가 다를 것이다. 그 차액 만큼의 돈을 현금으로 받아서 이렇게 쌓아 놓고 있는 것이다. 덩치가 너무 커지니까 달러나 엔화로도 좀 바꾸어 놓고 말이다. 사채시장 큰 손은 당연히 현금을 쌓아뒀을 것이고. 사이비 종교 교주놈도 신도들의 재산을 착취해서 자기 금고에 고이 모셔 놨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곳을 털려면 뭔가 준비를 많이 해야 하지 않나? 뒤가 구린 놈들이니 뭔가 준비를 많이 해놨을 거 같단 말이지.뭐 어떻게 하려고? 무슨 은신모드로 해서 몰래 잠입해서, 금고 따고, 돈 가지고 나오는 거냐? 이 슈트가 그런 것도 돼?’

'은신 모드는 없습니다.'

'하여튼 방법은 있는거지? 천하최강의 나노로봇인데 다 방법이 있겠지. 그럼 세 군데 다 털까?’

셋 다 괘씸하셔서 그러시죠? 뭐 상관없습니다만. 우선 한군데 하시고 나중에 돈이 더 필요하시면 차례차례 하시죠?’

 

아이가 정말 똑똑하다. 한의 마음을 정말 잘 파악한다. 3군데 다 털면 귀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한의 생각을 읽고 바로 솔깃한 제안을 한다.

 

오케이. 그럼 우선 사이비 교주 집부터 털자. 그런데 어떻게 털어야 하지?’

‘인근 CCTV와 방범장치들을 모두 무력화시킨 후, 빠르게 잠입해서 금고를 연 후, 빠르게 도망가면 됩니다.’

'그냥 터는 거잖아? 무슨 대단한 계획이 나올 줄 알았는데 최첨단 인공지능도 별거 없는데?'

'단순한 것이 제일 아름다운 법입니다.

‘하여간 말은~~~ 너도 진짜 주인 닮아가는구나. 그냥 답 없이 막무가내로 하는 거네.’

나노로봇은 주인님과 동화되게 프로그램 되어 있습니다. 닮아갈수록 싱크로율도 높아져 성능이 향상됩니다.’

이거 나 욕 하는 거 맞지? , 그건 됐다. 내가 머슴이랑 싸워서 뭐 하겠냐. 바로 시작하자.'

 

한은 혼자 방긋 웃고 나서, 깜짝 놀라서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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