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흡수 --------------------------------------------------------------------------------------------
미아는 새로운 기술인 천무를 시전했다.
선택자들 눈으로도 쫒아가기 힘들 정도로 아주 빠르게 오른쪽 건물로 이동했다. 뒤늦게 미아를 발견한 적들은 미아에게 집중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미아의 흔적만 따라갈 뿐이었다. 용광검 업그레이드로 미아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적들은 미아의 이전 능력치 데이타에 맞춰 공격을 했기 때문에 단 한 발도 맞추지 못했다. 뭔가 잘못된 것을 안 적들은 빠르게 미아의 능력치 데이타를 수정하고 재공격을 가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미아는 이미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미아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문 앞에 매복해있던 적들에게 공격을 가했다.
미아는 흰 빛으로 둘러쌓인 용광검으로 현관 오른쪽 뒤에 숨어 있는 선택자 한 명을 순식간에 베어버렸다. 문 뒤에서 암습을 노리던 녀석은 업그레이드된 미아의 공격에 제대로 된 반격 한 번 못하고 입고 있던 경량 나노슈트가 반으로 갈라졌 죽음을 당했다. 능력도 안되는 것들이 함부로 은신 능력을 쓰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같이 암습을 노리던 현관 왼쪽 뒤 선택자가 긴 창을 미아의 가슴을 향해 찔러들어 왔다. 두터운 중세 갑옷을 입은 선택자였다. 방어형인가? 미아는 용광검을 회수함과 동시에 무릅을 굽히며 아슬아슬하게 왼쪽 어깨 위로 창을 흘려버렸다. 순간 미아와 적의 눈과 서로 마주쳤다. 적의 눈에서 당혹감이 떠올랐다. 아니 어떻게? 미아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무릅을 굽힌 상태에서 상대방의 허벅지를 향해 용광검을 길게 찔러 넣었다. 긴 창을 회수하여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 임기응변으로 하늘 위로 점프를 했다.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용광검은 적의 오른쪽 발목에 깊은 상처를 냈다.
어라 잘리지 않았네? 역시나 녀석의 갑옷 자체의 방어막이 꽤나 강한 것 같았다. 그래도 전투 상황에서 이 정도 부상이면 죽은 목숨이다. 적은 다친 부위를 응급처치하면서 재빠르게 자기 편 쪽으로 도망갔다. 역시나 전투 경험이 강한 놈이다. 발목 상처는 나노로봇의 에너지만 충분하다면 손쉽게 회복될 것이다. 미아로써는 한 놈이라도 더 숫자를 줄여야 했다.
미아는 재빠르게 용광검을 던졌다. 도망가던 녀석의 머리를 정확히 뚫었다. 두 개의 나노로봇이 용광검에 포획되었다. '에픽 2개라, 역시나 대단한 녀석이었네?' 미아는 자신의 능력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쉽게? 고작 10%, 20%의 나노로봇 업그레이드가 이렇게 큰 효과를 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다.
[2분 30초!]
천무의 작동시간이 2분 30초 남았다.
1층과 2층에 나눠져 있던 10 명의 선택자들을 재빠르게 공격했다. 모두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녀석들이어서 미아와 같은 근접 공격자에게 거리를 잡히면 100% 사망각이다. 원거리 공격자들은 이동 시 평균 속도가 빠르지만 짧은 거리의 순간 가속력은 미아같은 근접 공격자에게 한참 뒤지기 때문이다.
문 뒤에 숨어있던 2명은 원거리 공격자들의 근접 방어를 위한 근거리 방어 특화 선택자들이었을 것이다. 멍청하게도 방어를 하지 않고 지맘대로 암습을 하려다가 자기네 팀 전체가 다 죽는 선택을 한 셈이 되었다. 공격이든 방어든 팀원의 조합이 중요하다. 근거리 방어 원조를 받지 못한 원거리 공격자들은 미아에겐 물 밖으로 뛰쳐나온 가여운 물고기에 불과했다.
미아가 다가오지 못하게 원거리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피해를 감수하면서 막무가내로 돌진해 들어오는 미아를 막을 수 없었다. 모두 에픽급 나노로봇을 가지고있었지만 제대로 반격 한 번 못하고 용광검에 쓸려나갔다. 미아는 건물 1층과 2층에서 광란의 춤을 추었다.
[Warning! Warning! 능력 '천무'가 종료되었습니다.]
벌써 3분을 다 써버렸다. 미아는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에서 잠시 숨을 크게 쉬었다. '천무' 기술을 사용한 후의 후유증이 몰려왔다. 어지러웠고, 숨이 턱 밑까지 찼다. 신체 능력을 강화한 후엔 반드시 몸이 적응할 수 있도록 연습을 해야 한다. 연습없이 바로 실전에 들어가니 몸에 이상반응이 온 것이다. 더 강해진 능력을 적응기간 없이 과도하게 사용하게되면 기존의 몸으론 무리가 갈 수 있고, 심지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겨우 정신을 차린 미아는 빠르게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3층엔 꽤 강한 녀석이 2명이 있다. 다른 건물들에 있던 적들도 속속 그녀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가다간 위 아래로 포위가 된다. 용광검 녀석이 3층에 강한 녀석들이 있다고 친절하게 이 정보를 알려주었다는 것은... 분명 미아 자신이 질 수도 있다는 경고다.
지금은 모험을 할 때가 아니다. 자신의 결정에 따라 대원들 모두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미아는 바로 3층에 올라가는 것을 잠시 미루었다. 2층에서 다른 건물에서 지원오는 녀석들을 먼저 처리하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질 것 같은 전투는 절대 해서는 안된다.
"2층에서 장기전 대비할께. 3층엔 쎈 녀석들이 좀 있다고 하네. 여 기서 개싸음 좀 해야겠어. "
"아무래도 유키 누나도 하나 흡수해야 할 거 같은데요? 저랑 할아버지도 당장 쓸만한 게 안 나왔어요."
"아니, 시팔... 유키는 지금까지 흡수 안 하고 뭐하고 자빠져 있던 거야? 유키! 나 요단강 건너면 그 때 할래?"
미아는 짜증이 폭발했다.
"미안, 미안. 지금 어떤 걸 해야 할지 결정을 못해서 그래."
"그냥 니 나노로봇이 하자고 하는 거 해. 이 결정장애 식충아!"
"지금 당장 할게.."
유키는 대장을 바라보았다. 대장은 눈을 감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유키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의 나노로봇 검은 고양이가 추천한 에픽 나노로봇을 꺼내 흡수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능력 '해킹'과 '호루스의 치유'가 생성되었습니다. 에너지가 모두 채워졌습니다. 나노로봇의 추가적인 능력치 향상은 없습니다.]
검은 고양이가 나노로봇을 흡수한 후의 상태를 유키에게 상세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야부레로(やぶ-れる).... 나도 꽝이야. 공격 능력이 없어. 상대편의 능력을 파악하는 해킹 능력하고 치유능력이 생겼을 뿐이야."
"와~~~~평상 시였으면 대박이 뜬 건데... 지금 필요한 거는 한 개도 없네. 운도 지지리도 없네요. 그럼 여기서 우리 모두 죽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허허허,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실망하나, 라마군? 포기하는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라네."
"시팔, 죽기는 왜 죽어? 여기서 어떻게든 시간을 끌 테니까 최대한 버텨보세요. 뭔 방법이 튀어 나오겠지."
[배리어 30%입니다.]
[--------------------------------------------------------------------]
"여보! 그만, 그만 멈춰요. 더 이상 하면 하면 안 돼요."
"아빠, 아빠! 그만하세요!"
.
.
.
"아빠!!!!!"
.
.
.
"이런 빌어먹을, 빌어먹을!"
[--------------------------------------------------------------------]
한은 잠시 옛 기억이 떠올랐다. 잊었던 괴로움이 다시 흘러나왔다. 얼굴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한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경멸스러웠다. 세상 모두가 '넌 역시나 안돼, 중요할 땐 항상 그랬잖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게 한계인 건가? 한은 축 늘어져 있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검붉은 피와 흙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 대원 한 명, 한 명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디 하나 멀쩡한 구석이 없었다. 나노로봇의 재생능력이 한계에 달해, 온 몸이 피와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었다. 모두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어느 누구도 삶에 대한 희망은 놓지 않고 있었다.
'시팔... 어쨌든 애들은 살려놔야지' 한은 나노로봇 아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이, 스칸다 봉인 해제 부탁해."
"괜찮으시겠어요?"
"어쩔 수 없잖아."
"스칸다 봉인을 해제합니다. 스칸다와의 동화가 재개되었습니다. 스칸다의 능력 사용이 가능해졌습니다."
"아이, 오랜만에 숨겨놓았던 능력 좀 사용해보자, 준비됐지?"
"알겠습니다. 동화율 23%. 능력 사용엔 제한이 있습니다."
"오케이, 오늘은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충분해. '대량살상' 발동!"
"대량살상 발동합니다. 하체 부위가 124% 더 강화되었습니다. 워리어 플랫폼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 플랫폼 전체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체 부위를 74% 강화로 다운시키고 상체 부위를 54% 더 강화하였습니다."
"좋아. 그럼 시작해 보자고!"
양자 통신을 통해 대장과 나노로봇 아이의 미스테리한 대화 내용을 들은 미아가 제일 먼저 소리쳤다.
"아니, 이 씨팔놈아! 너 이미 흡수한 적이 있던 거야?"
"다들 미안하다. 지금은 전투에 집중하자. 살아남으면 다 말해주겠다."
"대장 저 쉐끼, 구하기도 힘들다는 유니크 급으로? 와나~~ 저 왕 호박씨 쉐끼....!"
"대장, 다음번부터는 이렇게 마음 졸이면서 살지 말았으면 하네. 진짜 요단강 건너가는 줄 알고 지금 유언장 썼잖아."
"할아버지, 나중에 이야기하시죠. 미아, 니가 있는 건물로 바로 진입하겠다. 너한테 올라오고 있는 애들 쓸어버리자. 내가 신호하면 바로 아래로 공격해. 오케이?"
"오케이! 이. 씨. 발.로. 마."
한은 유니크 나노로봇 스칸다가 가지고 있던 '대량살상' 능력을 사용했다. 스칸다 나노로봇은 아이에게 흡수되었지만 자아가 남아있다. 그래서 아이의 워리어 플랫폼과 별도로 12개의 무기로 변신할 수 있다. 동화율 23%라 지금은 고작 3개의 무기로만 변신할 수 있지만 동화율이 높아질수록 무기의 종류가 늘어나게 된다.
한은 그중에서 호주식 부메랑과 한국식 환두대도, 그리고 한국식 국궁을 선택하였다.
특수 능력 '대량살상'을 사용하면 신체 능력은 2배 강화되고, 선택한 무기는 평상시보다 4배의 향상된 공격력을 10분간 보여준다. 기존 나노로봇 아이의 워리어 플랫폼이 가지고 있는 신체 능력 강화에, 다시 2배의 능력이 배가되게 된다. 대량살상의 장점은 무기의 공격력이 강해진다는 점이다. 유니크 나노로봇으로 만들어진 무기라 평상시 공격력 또한 대단히 높은데 공격력이 4배나 더 향상되어, 강화된 신체능력으로 펼치는 한의 공격은 같은 유니크 급의 방어형 나노로봇을 순식간에 짓이겨버릴 수 있게 된다. 쿨타임 또한 1시간으로 나쁘지 않다. 동화율이 높아지면 더 강해질 것이다.
'두 번 다시 쓰지 않는다고, 절대 다시는 쓰지 않는다고 다짐했는데... 나도 참 한심한 놈이다.'
한은 왼쪽 세븐일레븐이 있는 건물 쪽으로 활 12발을 한꺼번에 쏘았다. 그후 바로 부메랑 2개를 하늘 위로 멀리 던지고 바로 미아가 있는 오른쪽 쌍방울 건물로 이동했다. 추가적인 신체능력 강화로 인해 한의 워리워 플랫폼은 평소보다 2배 높은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기본 20배의 신체능력 강화에서 한 층더 업그레이드된 40배의 신체능력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흡수한 나노로봇에 대한 신체 적응을 이미 했었기에, 부작용없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한은 빠르게 질주해 들어갔다. 여기저기 숨어있던 적들은 원거리에서 총과 화살 등 다양한 무기를 쏟아부었지만 단 한발도 맞추지 못했다. 그만큼 한의 질주 속도는 놀라웠다. 한은 손쉽게 미아기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원거리 공격을 했던 6명의 적들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왼쪽 세븐일레븐 건물 1층에 있던 4명의 에픽급 적들은 한이 쏜 활로 순식간에 전투불능이 되었다. 앞으로 날아오는 화살 4발은 겨우 막아냈지만, 위에서 내려꽂는 4발의 화살이 각각의 머리를 관통해 버렸다. 2층에 있는 2명의 에픽급 적들도 순식간에 처리되었다. 2발의 화살은 간발의 차로 피할 수 있었으나, 소리도 없이 뒤에서 날아오는 2개의 부메랑에 각각 목이 잘려 나갔다. 한의 무기들은 피할 수 없을만큼 빠르고 치명적이었다.
12발의 화살과 2개의 부메랑이 한에게 자동으로 회수되었다. 한은 회수된 화살과 부메랑을 로마식 방패와 한국식 단검으로 각각 변환하였다. 한은 3층에 있는 적들을 빨리 끝내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했다. 놈들의 전투 수준과 물량을 고려했을 때, 어디에선가 빠르게 지원이 올 것이 분명했다.
미아를 공격하기 위해 1층에 모여있던 10명의 에픽급 적들은 크게 당황했다. 오히려 그들이 한과 미아에게 양각이 잡힌 것이다. 한은 미아에게 공격신호를 보내고는 바로 1층에 있는 선택자들과 전투에 들어갔다. 미아도 신호를 받자마자 2층에서 계단 아래쪽으로 내려와 적들을 공격했다.
장창과 쌍검을 든 선택자 두 명이 한의 앞을 막아섰다. 돌진하던 한은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다시 뒤로 빠르게 물러서며 단검 10개를 흩뿌렸다. 10개의 단검은 마치 유도미사일처럼 다양한 포물선을 그리며 그 두 명에게 달려들었다. 장창을 든 녀석은 불행히도 날아오는 단검들을 모두 막아내지 못했다. 단검 하나가 창지기의 심장에 박혔다. 나머지 한 명은 다행히 날아온 단검 5개를 모두 막아냈다. 하지만 뒤따라 날아든 환두대도까지 막아내지는 못했다. 쌍검을 든 적의 머리가 면도날처럼 깨끗하게 쓸려 나갔다.
반대쪽 2층에서 쇄도해 내려오는 미아도 눈앞의 적을 손쉽게 해치웠다. 카타나 장검을 든 적은 꽤나 강했다. 미아가 용강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자 재빠르게 튕겨내고는 빠르게 미아의 심장을 노렸다. 오히려 반격을? 꽤나 능숙한 찌르기였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다. 뒤쪽에서 크게 돌아들어오는 두 개의 비검이 그의 목을 관통해 버린 것이다. 미아의 새로운 무기, 비검이었다.
미아는 이미 또 하나의 에픽 나노로봇 간장막야를 2층에서 흡수했다. 나노로봇의 기본 성능을 8% 향상시켰고 새로운 고유능력 '정비(鼎沸)'가 생겼다. 5분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나노로봇의 능력을 50% 향상시키고 쿨 타임은 1시간으로 나쁘지 않은 평균 수준이다.
'비검을 흡수하지 않았다면, 내 심장이 먼저 뚫렸을거야.'
1층에 남은 적은 모두 7명. 세 명은 각각 총과 검, 그리고 창과 방패를 든 장비 계열, 두 명은 곰과 호랑이로 변신하는 수인 계열, 한 명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곤충 계열,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신화 계열이었다. 다행히 모두 에픽급 선택자들이었다. 흡수로 공격력이 한층 강화가 된 유니크급 한과 미아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차례차례 모두 죽음을 당했다.
"후우~~~ 이제 좀 땀이 차는데? 괜찮아?"
"지금 바로 들어가죠. 새로 생긴 특수능력 사용시간이 다 되기전에 하나라도 더 처리해야 해요."
"워~~워~~ 급할 수록 돌아가란 말 몰라? 잠깐 좀 멈춰봐. 몸이 아직 제대로 적응되지 않았을거야. 숨 좀 크게 들여마셔."
지금까지 처리한 적은 모두 28명. 3층에 있는 12명과 다른 건물에 산재해 있는 62명, 총 84명의 적이 남았다. 중요한 것은 그들 중 유니크 선택자들의 수였다. 아이의 분석에 의하면, 남은 유니크는 이 건물에 있는 1명 포함 총 2명이 존재한다.
한은 재빨리 계산을 해보았다.
지금 3층에 있는 유니크 1명을 포함한 12명을 제거할 수 있다면, 이 위기도 헤쳐나갈 수 있다. 자신의 대량살상 능력과 미아의 정비 특수 능력의 쿨 타임이 끝나기 전에 저 12명을 해치울 수만 있다면... 그러면 살아남을 길이 열리는 것이다. 남은 62명의 적들이 전의를 잃고 도망갈 수도 있고, 아니더라도 적 공격력이 약화되어 다시 쿨타임이 채워질 때까지 어떻게든 버틸 수도 있을 것이다. 팀원들의 고유능력을 다시 쓸 수 있게 되면, 그 땐 적들이 우리의 사냥감이 되는 것이다.
"몸은 좀 어때?"
"낫 배드"
"오케이! 이제 3층 들어가자!"
한은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쉰 후, 3층으로 바로 뛰어들었다. 미아도 한의 뒤를 따랐다.
그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다양한 무기들이 비오듯이 날아왔다. 댜양한 구경의 총알들, 길고 날카로운 얼음 화살, 주먹만한 불덩이들까지 빈틈없이 그들을 향해 쏟아졌다. 레일건과 기관총 계열 나노로봇, 그리고 궁사와 마법사 계열의 나노로봇을 장착한 적들이 있는 것이었다. 하나하나 모두 강력한 위력을 뿜어내었다. 하지만 치명적이진 않았다.
누가 유니크일까?
한은 적의 공격을 재빠르게 막았다. 로마식 방패 스쿠툼을 만들어 커다란 방어막을 만들었다. 방어막은 온 몸을 충분히 보호할만 한 크기로 펼쳐졌다. 레일건으로 쏜 초고속 총알들이 날아들었지만 스쿠툼 방패에 작은 흠조차 내지 못했다. 하늘을 뒤덮을만큼 많은 얼음 화살과 불덩이들도 쏟아졌지만, 이 역시 별다른 타격을 가하진 못했다. 나노로봇 아이가 적 대형 형태와 강약점을 한 눈에 펼쳐 보여주었다.
적 대형은 전형적인 방어 집중 후 원거리 타격 대형이었다. 앞에 3명은 커다란 방패를 들었다. 전형적인 방어형 선택자들이다. 바로 뒤에 2명이 긴 장창을 들어 근접 공격을 막고 있다. 그 뒤에는 다시 3명이 방어 라인을 형성하고 있었다. 3명의 선택자 중 2명은 수인형으로 각각 곰과 늑대인간 형상이었고, 다른 1명은 신화형으로 바위인간 형태였다. 공격형 선택자들이다. 2선이 무너지면 땜빵을 하거나, 공간이 보이면 기습공격을 하려는 것일게다.
맨 뒤에 주인공이 보인다. 3선의 3명 뒤에 갑옷을 입은 한 명이 있는데, 갑옷 형태나 풍기는 포스를 봤을 때, 이 놈이 대장으로 보였다. 일본 요로이 갑옷을 입고 중세 서양식 롱소드를 든 녀석이었다. 롱소드? 분명 방진 대형을 봤을 때, 원거리 공격자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맨 뒤에 총과 활 등 원거리 무기를 든 선택자들 3명과 마법사 한 명도 보였다. 모두 원거리 공격자들이다. 마지막 라인 녀석들 중엔 유니크 급이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유니크는 어디에 있는거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그래도 묘하게도 잘 어울렸다.
"저 갑옷 녀석이 여기 리더일 것 같은데, 너무 리더같아서 또 아닌거 같아. 뭔지 모르겠는데 전체적으로 이상해."
"대장 말대로 뭔가 아구가 맞지가 않아. 갑옷 녀석은 잡탕으로 이것저것 다 흡수한 모양인데? "
한은 저 일본 갑옷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오랜 전투에서 오는 본능이 섯부른 공격을 막았다.
"골치 아프네. 저 갑옷 녀석, 뭔가 있어 보여. 아니 저 팀 자체가 묘하게 이상해. 곧바로 들어가긴 좀 그렇지, 미아?"
"쫄았어? 내 새로운 능력도 이제 곧 끝나. 시간이 없다고."
"그래도 작전은 짜야지. 놈들이 꽤 많잖아."
"어휴 진짜. 나 먼저 들어간다."
"아니, 야! 생각 좀 하고 들어가자고."
미아는 쏟아지는 총알들과 얼음 화살 몇 개를 몸으로 맞아가며 바로 방패병 3명에게 직진해 들어갔다. 적들은 뜨거운 열기가 몰려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달궈진 용광검은 그 자체가 뜨거운 태양이었다. 적의 방어력이 미아의 용광검 능력에 의해 눈에 띄게 약해졌다. 뜨거운 열기로 인해 적 나노 슈트가 방어능력 일부를 떨어뜨리고 적정 체온 유지를 위한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한은 천장의 여러 방향으로 부메랑들을 던진 후, 스쿠툼 방패 역시 적에게 집어 던졌다. 그리고 바로 미아 뒤를 바로 쫒아갔다. 부메랑은 방패병 뒤에 있는 장창병 2명을 향해 날아들었다. 장창병들은 부메랑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다란 창을 거두었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미아는 왼쪽 방패병의 육중한 사각 방패를 깨끗하게 두동강 내었다. 이렇게 쉽게 잘라진다고? 남은 방패병은 순간 당황했다. 허리춤에 찬 칼로 미아의 칼을 막으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미아의 용광검이 방패병의 허리를 가로로 녹여버렸다.
하지만 적들도 만만치 않았다. 뒤에 있던 바위 인간이 방패병의 빈자리를 곧바로 메꾸었다.바위 인간이 거대한 돌들을 소환해 미아 앞에 세웠다. 깨어졌던 방어 대열이 순식간에 복구되었다.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까? 적 하나 하나가 방진에 숙달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적의 거센 저항은 딱 거기까지였다. 한이 던진 스쿠툼 방패가 시차를 두고 뒤늦게 날아들어 미아 앞을 막아섰던 거대한 돌들을 간단히 부숴버렸다. 당황해 하는 적들. 미아의 용광검이 주춤거리던 가운데 방패병의 방패와 몸을 순식간에 두조각 내버렸다. 뒤따라 오던 한은 미아를 뛰어넘어 바로 일본 갑옷에게 달려들었다.
한은 처음부터 이 녀석을 노리고 있었다. 저 기분나쁜 우두머리를 먼저 쳐서 없애버려야만 할 것 같았다.
일본 갑옷은 제빠르게 롱소드를 가슴 쪽으로 찔러왔다. 마치 예상한 듯한 반응속도였다. 한은 롱소드를 가까스로 튕겨내며 그 녀석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업그레이드가 안되었으면 분명 몸 어딘가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강했지만, 업그레이드가 된 한에겐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상태라면, 어쩌면 주먹 한 방으로 날려버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순간, 나노로봇 아이가 위험 경보를 날렸다. 어디에선가 보이지않는 사각에서 한의 심장을 향해 총알들이 날아왔다. 그와 동시에 일본 갑옷의 롱소드가 한의 허벅지를 향해 쓸어올라왔다. 보이지 않는 저격수와 일본갑옷, 손발을 많이 맞추어 본 절묘한 콤비네이션 공격이었다.
업그레이드 된 그로써도 둘 다 막을 수는 없었다. 빛처럼 빠르게 판단해야 했다. 에픽으로 보이는 녀석의 총알들은 어떻게든 몸으로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좀 다치더라도 적 대장을, 유니크 선택자를 지금 아작내야 이 지긋지긋한 전투를 끝낼 수 있다.
한은 오른 손에 쥔 환두대도로 롱소드를 쳐내면서 왼손에 있던 단도 10개를 모두 일본 갑옷 녀석에게 던졌다. 단도들은 비선형의 곡선을 이루면서 일본 갑옷 여러군데를 꿰뚫었다. 한은 일본 갑옷을 입은 녀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투구 안은 텅 비어있었다.
'!'
"퍼억! 퍼버벅!"
한은 10 미터 뒤로 튕겨져 나갔다. 날아온 총알들은 단순한 에픽급 총알이 아니었다.
그 녀석이, 그녀석이 유니크였다!
한의 워리어 플랫폼 상의가 크게 훼손되었다. 한 또한 크게 상처를 입었다. 유니크 워리어 플랫폼이 아니었다면 한의 몸은 갈기갈기 찢어졌을 것이다. 나노로봇 아이가 크게 손상되어 신체복구가 바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의 몸은 여기저기 흘러나오는 피로 피투성이가 되었다. 땅바닥에 흥건히 피가 고였다. 격심한 고통이 밀려들어왔다.
그 모습을 모두 본 미아는 다급했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의 방패병의 가슴을 검으로 꿰뚫은 후 빠르게 대장의 곁으로 다가갔다. 상황은 생각보다 더 급박했다. 한을 한 손으로 나꿔채어 바로 아랫 층으로 내려왔다. 나노로봇 용광검이 알려준 엄폐 공간으로 그를 옮긴 것이다.
"저 녀석이 보스였네"
한은 미안하게 웃으면서 미아에게 이야기했다. 대장의 상처는 매우 심각했다. 여러 상처 부위에서 피가 쉴틈없이 밀려나왔다. 한은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통증이었다. 나노로봇을 가진 후부터는 작은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었다. 누군가가 상처 부위들을 칼로 쑤시고, 톱으로 썰고, 망치로 때리는 것 같았다. 다시 평범한 인간이 된 것이다.
나노로봇 아이는 언제 상처 복구를 할 수 있을까? 미아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나노로봇 아이는 지금 당장 복구할 능력이 없다. 그리고 피를 흘리는 이 상태가 몇 분 더 지속되면 대장은 아마도 죽게 될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하나 더 흡수해!"
"닥쳐!"
"그 방법 밖에 없어."
"닥치라고!"
"그럼 그냥 죽을래? 아들은 어떡하고?"
"귀가 이상해? 닥치라는 소리가 안들리냐?"
"우리들 다 놔두고, 정우 고아 만들고 이렇게 너 혼자 도망갈꺼야?"
"이 상태에선 흡수하다가 그 충격으로 죽을 수 있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방법 밖에 없어."
나노로봇 흡수 자체가 기존 나노로봇과 선택자 모두에게 막대한 에너지를 전이하기 때문에, 잘못되면 큰 손상을 받게 된다. 더구나 흡수 실패가 일어나면 흡수하는 선택자의 신체가 실패 상태에 따라 일정한 비율로 손상되기 때문에, 지금같이 크게 다친 상태로 흡수에 실패하면 바로 죽을 수도 있다. 흡수에 성공하더라도 신체 또는 정신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니 나로로봇이 추천한거냐?"
"지금 그게 중요해?"
"중요해!"
"별 미친! 완전 내 생각이야. 이제 됐어?"
그제서야 한은 미아의 의견에 동의했다. 지금 상태에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냥 기다리다가 죽느니 나노로봇을 흡수하는 도박을 하는 것이 살아남을 확률을 더 높이는 길이었다. 하지만 하나 더 흡수하게 된다면... 예전의 자신과는 더욱 더 멀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 남아있는 자아라도 온전히 유지하고 싶었다. 다시는 흡수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나? 그냥 죽어버릴까? 어떻게 해야 하나?
다른 방법은 없다.
한은 나노로봇 아이를 불렀다. 아이에게서 아무런 응답이 없다. 아이 역시 크게 파손되어 정상 작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자신을 복구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은 포기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 아이를 불렀다. 여전히 아이는 죽은 듯 아무 반응이 없었다.
"3층에 남아있는 놈들이 움직이고 있어!"
미아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챈 적들이 방어대형을 풀고 한과 미아가 위치한 3층 계단 쪽으로 서서히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오고 있었다. 미아의 특수 능력도 끝나 버렸다. 현재 상태의 미아로서는 다가오는 적들, 유니크 1명과 에픽 7명으로 이루어진 적들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
바닥에 피가 흥건하게 고이기 시작했다. 미아는 나노로봇을 통해 다시 한 번 대장의 상태를 체크했다. 대장의 상태는 급속하게 나빠지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죽을 수는 없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천애고아로 만들 순 없잖아!"
한은 얼굴을 찡그리며 온 몸의 힘을 모았다. 한은 마치 하늘에 가지고 있던 모든 화를 내뱉듯이 크게 외쳤다.
"아크로포스. 다리우스를 흡수해!"
워리워 플랫폼이 미약하게나마 빛을 내기 시작했다. 한이 간절한 외침이 아이에게 전달된 것일까? 드디어 나노로봇 아이가 한의 명령에 응답했다.
"아크로포스. 다리우스를 흡수합니다."
"성공하였습니다!"
한의 몸 주위에 작은 빛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미아는 긴장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트로포스의 기본 성능을 7% 향상시킵니다. 새로운 고유 능력 '핏빛 폭풍'을 획득하였습니다."
"에너지가 충전되었습니다. 주인님의 신체 복구를 시작합니다."
아이는 한의 상처를 빠르게 치료했다. 워리어 플랫폼도 새 것처럼 완전히 복구되었다. 한은 안도했지만 한편으로 또 의아해 했다. 왜 작동이 안되었다가 흡수 명령은 바로 수행이 되었는지. 바로 전까지만 해도 나노로봇 아이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지 않은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계속 떠올랐다. 그 동안 수 많은 전투를 통해 파악한 능력들 이외에도 알 수 없는 또 다른 능력들이 나노로봇 아이에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선 3층에 있는 적들을 물리쳐야 했다. 살아남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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